노은결 해군 소령 폭로 기자회견 전문
(※ 노은결 해군 소령 폭로 기자회견 전문 중 일부 단락의 내용은 발언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경험하신 기자 여러분과 국민들께서 제 이야기를 믿어 주실지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습니다. 저 하나만 연관된 문제였다면 조용히 침묵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군인 신분이라 웬만하면 조용히 지나가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을 치겠다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협박을 해왔고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사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가장으로서 제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겪은 참담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0월 23일 오후 1시경 서울 용산 국방부 역내 병영생활관 8층에서 저를 사찰하던 신원불상의 인력에게 폭행과 협박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 계단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정확히는 요추 2번 골절 및 왼쪽 손목 골절로 수술을 받았고, 군의무 조사를 통해 심신장애등급 7급, 장애보상 등급 3급, 상이등급 6급으로 퇴역 대상이 되었지만 전역 보류 및 계속 복무 신청을 해둔 상태이며 현재는 재활 치료 중에 있습니다.
당시 신원불상의 그 인원은 저에게 “대통령에게 충성하지 않는 빨갱이”라고 하였고, 저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협박을 하였습니다. 제가 보는 앞에서 제 아내를 성폭행하고 이제 두 돌 된 제 딸 얼굴에 큰 상처를 내서 평생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얘기하였습니다. 이 같은 모욕과 협박을 듣고 평생 침묵하면서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든 가족들에게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계속 살 순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 가족들에게 실제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죄책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지, 오히려 가족들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건 아닐지 두렵고 떨렸지만, 가족들을 생각하고 진실을 알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협박을 받게 된 경위
저는 2022년 1월부터 2023년 10월 말까지 약 22개월간 국방부 근무지원단 의장대대 해군 의장대 대장으로 근무하였고, 올해 7월 육아 휴직을 신청해 현재는 휴직 상태입니다.
국군의 날, 외국 정상 방문 등 대통령실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하며 대통령실 1층에 들어설 때마다 양쪽 벽면과 천장에 걸린 그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속과 주술과 관련된 그림처럼 느껴졌고, 행사 대기 중 경호처 소속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자기들끼리 “김건희 여사가 그림을 구입했다, 그림이 매우 비싸다, 무속이나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더라”라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대통령실에서 이상한 얘기를 듣거나 하면 대통령실을 나와 제 휴대전화에 보이스 녹음 형식으로 들은 내용을 녹음했습니다. 지나가면서 들었던 얘기를 옮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인지를 입증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훗날 의미 있는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 녹음을 하였습니다.
사찰과 협박
제가 사찰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올해 7월이었습니다. 저는 바다마을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 바로 옆에는 해군 호텔이 있는데, 해병대 임성근 사단장이 올해 4월 해군 호텔에 방문한 것을 봤습니다.
저는 故 최수근 상병 사건에 크게 분노해왔습니다. 두 돌 된 제 딸도 시험관 시술 실패를 거듭하다 3년 만에 어렵게 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故 최수근 상병 부모님의 마음이 어떨지 그 상실감과 아픔에 공감이 됐습니다. 또한, 저 역시 장교이자 지휘관으로서 임성근 사단장이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분노했습니다.
임성근 사단장의 모습을 본 이후, 임 사단장 혹은 그와 비슷한 사람이 해군 호텔에 나타난 걸 보면 촬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가 부인했던 사실이 나중에 드러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촬영한 사진은 차에 두고 다니던 태블릿 PC에 그때그때 옮겼습니다.
올해 7월에도 촬영을 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태블릿 PC를 옮기고 있는데, 어느새 남성 두 명이 제 양옆으로 다가와 저를 제압하고 태블릿 PC와 휴대전화를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죽고 싶냐”며 “지금이라도 가족이 안전하고 싶다면 쓸데없는 행동을 멈추라”고 협박했습니다.
사건 전날과 당일
사건 전날인 10월 22일, 가족들과 함께 타임스퀘어에 방문했을 때 화장실 칸에 들어가 있는데 누군가 화장실 문 밖에서 “내일 12시 병영생활관 9층”이라고 말했습니다. 듣는 순간 그들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듣는 순간 그들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각종 녹취나 폭로가 뉴스를 도배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불상의 그 인원들도 제가 무얼 얼마나 알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가족들이 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왔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의 관계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용산 국방부로 들어갔습니다. 국방부에 가는 도중 일이 잘못돼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때 제보 메일을 작성해서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와 이종원의 ‘시사타파 TV’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동문 행정안전실에서 출입 조치를 받아 병영 생활관으로 곧장 갔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던 중,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남자가 나타나 욕을 하는 동시에 제 복부를 가격하며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 “누가 또 알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가족은 전혀 모르고 이제 그만하려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선글라스를 쓴 남성은 “다른 곳에 제보한 적 없는지”를 캐물었습니다. 저는 “제보한 적이 없다”고 답했지만, 신원불상의 그 남성은 제 핸드폰을 빼앗아 뒤져보기 시작했고, 곧 제가 제보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가지고 온 전선줄을 꺼내 저에게 계단에 묶으라고 시켰습니다. 이후 그는 저를 난간 바깥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그는 “오늘만 순순히 잘 따르면 저와 가족이 안전할 수 있다”고 하며 모든 지시에 저항 없이 따르도록 요구했습니다. 계단 바깥쪽에 매달리자, 멀티 전선으로 제 목을 묶으며 그는 “여기서 떨어져 봐야 죽지는 않고 허리만 병신이 된다. 오늘은 경고로 끝내겠지만, 다음번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네가 아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고, 저는 “아는 게 없고 그만 끝내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저를 도발하려는 듯 앞서 말씀드린 참담한 말로 저와 제 가족들을 협박했습니다. 그의 말에 흥분한 저는 소리치며 계단을 넘어가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그는 저를 때리기 시작했고, 저는 계단에서 떨어져 온몸에 충격을 받은 채 정신을 잃었다가 그날 저녁 발견되어 국군 수도 통합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의미와 결심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임성근 사단장에 대한 분노로 그의 사진을 찍은 행동이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을 불법적으로 사찰하고, 아내와 딸의 안전을 협박하고, 나아가 저를 폭행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국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들이 무서워 그냥 조용히 살자”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나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가족에게 큰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10월 23일부터 저와 제 가족은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어떤 식으로든 저와 제 가족이 당한 불법 사찰과 폭력을 끝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가해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저에게 사건 당일 위해를 가한 그 인물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자수하고 양심 고백을 하십시오. 당신도 나처럼 누군가를 상급자로 모시고 조직에 충성하는 부하일 것이며, 한 집안의 아들이자 누군가의 친구, 형제, 아버지일 것입니다.
올바르지 못한 지시와 판단으로 잘못을 저질렀다면 지금이라도 양심 고백을 통해 바로잡으십시오.”
요청 사항
저의 사고에 대한 국방부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병영생활관 주변에 설치된 CCTV를 분석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군 수사관들은 “대통령실 경호처가 관할권을 가지고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통령실 경호처에 요청드립니다.
- 군 수사에 협조해 주십시오.
- 은밀히 이루어진 차별적 폭력을 입증할 증거를 밝힐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저는 14년간 군인으로 복무하며 명예와 제 가족의 안전을 운명에 맡기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 10월 23일 병영 생활관에서 벌어졌던 국가 폭력이 명백히 밝혀져, 군대 내에서 저 같은 피해를 받는 군인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또한, 12월 3일 비상 상황에 영문 없이 투입된 군인 상당수 역시 권력의 사유적 이익을 위해 도구처럼 사용된 국가 폭력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더는 군인을 도구처럼 여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불법적 사찰로 인해 국민들의 추가적인 피해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애도의 메시지
아울러, 억울하게 희생당한 고 최수군 상병의 명예를 빕니다.
또한,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후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현역 군인들과 군인 가족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딸에게 남기는 말
마지막으로, 대한민국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저의 딸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오늘의 제 이야기를 듣게 될 날을 기다리며, 박노해 시인의 시를 남깁니다.”